『해방 80년 국민들과 함께 한 그 때 그 시절, 80대 히트 상품』 Ⅱ - ▣자동차, ▣레이저 시설, ▣술·담배, ▣가전·전자제품, ▣금융상품, ▣학습교재·문구·완구, > 고객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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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80년 국민들과 함께 한 그 때 그 시절, 80대 히트 상품』 Ⅱ - ▣자동차, ▣레이저 시설, ▣술·담배, ▣가전·전…

Lidia 작성일25-12-17 11:53 조회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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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대전이사,대전익스프레스,삼손익스프레스,대전사무실이사,대전포장이사,제주도이사,1660-2404 80년 국민들과 함께 한 그 때 그 시절, 80대 히트 상품』을 도 보시려면 아래 URL을 클릭하세요 ▣음료·과자, ▣조미료·냉동식품, ▣라면, ▣의류·화장품·세제·신발, ▣의약품, ▣자동차, ▣레이저시설, ▣술·담배, ▣가전·전자제품, ▣금융상품, ▣학습교재·문구·완구, ​ 6.자동차 ​⊙시발 자동차(1955), ⊙기아 삼륜차(1969), ⊙포니(1976), ⊙포터(1977), ⊙봉고(1980), ⊙쏘나타(1985), ⊙그랜저(1986), ⊙프라이드(1987), ⊙티코(1991) [40] 최초 자동차 ‘시발(始發 : Shival)’(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1955년10월 창경원에서 열린 광복10주년 산업박람회 출품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시발 1호자동차삼성화재 모빌리티뮤지엄에 복원한 시발​ 40 한국전쟁 이후 경제 재건이 한창이던 1955년,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는 한국 기술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 ‘시발(始發)’을 선보였다. 국산화율 50%에 손으로 조립하는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시발(始發)자동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첫 발자국을 남긴 기념비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최초의 디젤엔진 뻐스 ‘시-발듸-젤뻐쓰’(국제차량제작소)​시발차를 만든 국제차량제작소는 이 사진처럼 버스도 제작했다. 명칭은 ‘시-발듸-젤뻐쓰’. 하체는 폐차된 미군 군용트럭의 것을 이용했으나, 엔진은 이스즈의 DA120 6,126cc 125마력 디젤 엔진을 사용했으며 국내 최초로 디젤 엔진을 사용한 버스였다. 그러나 발매했던 시기가 1961년 10 30일이라서 얼마 안 가서 새나라 자동차에 밀리게 되었던 끝물 시기로 사실상 가장 마지막으로 발매한 모델이며 생산 대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시발자동차는 드럼통을 두드려 편 차체에 미군이 버리고 간 지프 엔진을 분해해 활용했다. 특히 바디, 프레임, 타이어, 헤드라이트 등이 모두 국산이라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컸다. 자생적인 자동차 제조가 가능하다는 희망과 같았기 때문이다. 1963년 까지 약 3천여 대가 생산, 판매되었다.하동환자동차 공장. 자동차모빌리티산업관​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 이외에 초창기 자동차의 업체로는 정주영회장이 1940년 마포구 아현동에서 운영한 ‘아도써비스’(현대자동차의 전신)와 하동환 회장이 1954년설립한 ‘하동환자동차제작’(KG모빌리티···▶舊 쌍용자동차전신) 그리고 1965년 설립된 ‘아시아자동자공업주식회사’(기아자동차의 전신)와 1962년설립된 ‘새나라자동차주식회사’​(한국GM의 전신)이 있다 ​​[41]기아 삼륜차 T-600(기아산업···▶기아자동차 )1969년 K360의 후계로 등장한 T600은 K-360의 강화판에 해당하는 차종으로, 2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577cc의 수랭식 4행정 엔진을 채용하여 500kg의 적재중량으로 K360에 비해 여러모로 월등한 성능을 자랑했다.일본 토요공업(현재 마쯔다)이 K360 삼륜 초소형 트럭을 내놓은 시기는 1959년 5월이다. 이어 한 달 만에 소형 삼륜트럭 T600 판매에 들어갔다. ​한국에선 기아산업이 마쓰다와 삼륜차생산 기술협약을 체결하고 국내에서 조립 생산했다. 시작은 K360이었지만 1969년 적재 용량이 500㎏에 달하는 T600으로 생산 차종을 바꿨다. 가격은 대당 36만원이었다. 물론 이보다 앞선 1967년부터 T2000중형 삼륜트럭도 있었다. ​다만 골목길을 누비기에는 덩치가 큰 만큼 초소형과 중형 사이인 T600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기아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폭주하는 화물은 기아마스타로’라는 광고를 앞세워 T600 표준형, 탱크로리, 덤프트럭, 보온 및 냉장차를 공급했다. 기아 헤리티지로 복원되어 공개된 기아 삼륜차 T-600기아 삼륜차 T-600 신문광고기아 삼륜차 T-600 내부기아삼륜차 전면부와 적재부​ 41 1969년 8월 기아가 선보인 T-600 삼륜차는 좁은 골목길과 복잡한 도심에서 소화물 수송이 절실했던 시대의 요구에 대한 해답이었다. 일본 동양공업(현 마쓰다)과 기술 협력을 통해 탄생한 기아 삼륜차는 작은 차체와 가벼운 무게로 산동네와 골목길을 누비며 연탄, 쌀 배달 등에 널리 쓰였다. ​세 개의 바퀴를 지닌 독특한 외형 덕에 ‘삼발이’라고도 불렸으며, 우편 수송을 비롯한 도심 용달차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 [42] 최초 승용차 ‘포니(Pony)’(현대자동차)1974년 트리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이며 세계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국내에서는 1976년 2월 출시되었고, 가격은 228만원대였다. 출시 첫 해 1만 726대가 팔리며 단숨에 승용차 시장 점유율 43%를 기록하였고, 이후 50%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며 국내 자동차 산업의 기준을 새로 썼다.포니(Pony)는 197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공개되며 세계에 한국 자동차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맡았고, 엔진과 기술은 일본 미쓰비시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그야말로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였다​포니(Pony)는 1.2L, 1.4L 엔진을 장착했고, 단순하고 직관적인 기계 구조 덕분에 유지 보수가 쉬웠다. 최고속도는 약 150km/h에 달했으며, 당시 한국 도로 사정에 맞게 내구성과 실용성을 갖춘 모델이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국민들에게 ‘내 차를 가진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포니 픽업(1976년 5월 출시)포니 왜건(5도어 스테이션 왜건 : 1977년 출시)포니 3도어 - 2열도어를 없애고 후면의 뒷유리창과 트렁크 덮개가 함께 열리는 해치도어 적용포니 쿠페 2023포니 콘셉트 카(PONY COUPE CONCEPT) - 1974년 양산이 취소되었다 2023년 부활한 콘셒트 카​ 해치백 외에도 픽업트럭, 왜건, 자동변속기, 3도어, 1.4L 고성능 트림 등 다양한 모델로 라인업을 확장하였고, 1982년에는 부분 변경 모델인 포니2가 출시되며 1990년까지 장수 모델로 자리잡았다.​지금 시점에서 포니(Pony)를 보면 최신 자동차와 비교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첫걸음’의 가치는 그 어떤 첨단 기술보다 크다. 포니(Pony)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의 출발점이었고,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었다. ​실제로 1976년 에콰도르 6대 수출을 시작으로, 1983년에는 캐나다 진출, 1985년에는 5만 대 이상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해외에 수출되며 한국 자동차의 위상을 높였다.​현대 포니(Pony)는 단순히 오래된 차가 아니라 한국의 산업 발전과 국민의 자부심을 담은 역사적인 차이다. 지금은 도로에서 보기 힘들지만, 클래식카로서 여전히 매력을 발산하며, 현대자동차의 뿌리이자 현재 아이오닉 시리즈 같은 전기차로 이어지는 혁신의 시작점이 되었다.​ 42 현대자동차 포니(Pony)는 참다운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독자 생산한 최초의 승용차다. ‘포니 정’ 고 정세영 회장의 의지로 1973년 개발을 시작해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고, 1975년 말 상업생산에 들어가 1976년 2월 공식 출시됐다. ​출시 직후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했고, 누적 판매량은 약 74만 대다. 현대차는 2023년 헤리티지 브랜드 플랫폼 ‘현대 리유니온’을 통해 ‘포니 쿠페’를 복원 및 공개했다. ​ [43]소형 디젤 상용차 포터 (Porter : HD-1000) (현대자동차)자체 디자인한 HD1000 모델은 밴(유개화물차)과 트럭만 포터로 불렸고, 승합모델은 미니버스로 팔렸다.이 미니버스는 이후 그레이스로 부활하기도 한다.​포터와 그레이스가 나오기 전에 트럭 모델은 더블캡도 있었으며, HD1000은 1980년 퍼터밴/ 미니버스를 포함하여 누적 판매량이 3만대를 돌파하기도 했으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단종된다.1986형 포터◀···포터 HD-1000···▶1996년형 뉴포터​ 43 현대자동차가 1977년에 출시한 포터(HD-1000)는 국내 최초의 소형 디젤 상용차이자 디자인과 설계를 독자적으로 진행한 첫 국산 트럭이다. 더블캡, 밴, 미니버스, 앰뷸런스 등 다양한 파생 모델도 출시됐으나 1981년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단종됐다가, 1986년 후속 모델이 등장하며 생산이 재개됐다.​현대자동차에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한 고유모델 1톤 트럭 및 승합차로 1980년 9월에 출시된 기아 봉고보다 3년 빠르다. 이 차종은 현대 포터의 1세대에 속하기도 한데 트럭 사양의 이름이 짐꾼을 뜻하는 '포터'이기 때문이다. 소형 디젤 상용차 포터 (HD-1000) , 1977 - 직렬4기통 디젤엔진, 후륜구동, 배기량 1,760CC, 변속기 4단 수동, 공차 중량 1,400kg. 전장 4,140mm, 전폭 1,610mm, ​현대자동차가 당시의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자체 디자인한 독자생산모델 HD1000은 소형 상용차 1톤 트럭의 지평을 연 모델이었으며, 포니와 함께 현대자동차의 초석이 되는 모델이다. 대한민국의 짐꾼인 "포터" 역사의 시작이었다.포터 미니버스- 업무용·출퇴근용·레이져용, 12인승- 슬라이딩 도어포터밴 - 전천후 안전수송용 - 디젤엔진으로 수송비 절약현대 앰브란스 7인용- 일반문은 슬라이딩 도어이고, 뒷문 출입문이 크고 실내공간이 넓다. 포터 더블캡 - 다양한 용도와 뛰어난 기동성, 각종 긴급출동시 충분한 인원과 장비 탑재 가능​트럭의캡 형태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픽업트럭의 기존 운전석과 조수석 외에 뒤쪽의 승차정원 공간을 확장한 형태다. 쉽게 말해서 승용차 + 트럭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더블 캡 차량으로는 1톤 트럭인 포터와 봉고의 더블 캡 사양이 있다​일반 승합차 모델은 '미니버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구급차 모델은​ '앰브란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밴 모델은 '포터 밴'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대한민국이 자체개발한 ‘첫 1톤 상용차’ 모델이자, ‘미니버스’인만큼 국산차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모델이나, 2000년대 이전에 노후화로 대거 폐차되어 현재는 개체수가 단 한 대도 남아있지 않으며, 심지어 박물관에조차도 보존되거나 전시된 것이 없다. ​생산기간이 짧은 것이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 당시 자체개발도 미약했던 수준이라 자동차의 품질이 상당히 조악한 탓에 승차감과 내구성도 매우 좋지 못해서 결국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44]소형 승합차 ‘봉고(Bongo)’ (기아 산업···▶기아자동차)봉고 코치 1981,봉고 코치 12인승, 1981년 8월,봉고 나인 9인승, 1983. 봉고타운, 9인승, 1985. ​ 44 기아가 1980년 출시한 봉고는 일본 마쓰다의 봉고2세대 모델 승합차를 라이센스 도입해서 출시해서 엄청난 판매량 덕분에 순수한 대한민국 모델이 아님에도 지금까지 승합차 및 원박스카 계열의 차를 봉고차로 불릴 정도로대한민국 승합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이다. ​12인승과 9인승 모델을 앞세워 명절 민족 대이동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벌초·성묘객들이나 열차·고속버스를 놓친 귀성객들이 봉고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익숙한 명절 풍경이 됐다. ​출시 4년 만인 1984년 5월 누적 생산량 10만 대를 돌파했고, 1985년 말까지 18만9216대가 판매됐다. 이동 사무실, 광고판, 단체 여행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봉고 문화’가 형성됐고, ‘봉고차’는 지금도 소형 승합차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45] 최초 중형 승용차 ‘쏘나타(Sonsta)’ (현대자동차)1985년 11월 출시된 대한민국 최초의 고급 중형 승용차 ‘소나타’​ 중형 세단 스텔라의 최고급형으로 자동차를 보유하는 것 자체가 중산층을 상징하던 시기였기에 누구도 상업적으로 큰 성공거둘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었다. ‘크루즈 콘트’.‘전자식 4단 변속’, ‘운전석 파워시트’등 당시 첨단 사양으로 현대자동차가 한발더 나아갈수 있는 발판이된 기술혁신이었다. ​ 45 현대 쏘나타는 1985년 11월 출시된 대한민국 최초의 고급 중형 승용차다. 현대의 두 번째 고유 모델인 ‘스텔라’를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국산차 최초로 크루즈 컨트롤, 메모리 시트, 뒷좌석 슬라이딩 시트 등 고급 사양을 적용했다. 현재 8세대 모델까지 나온 쏘나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단일 차종 브랜드이며 누적 판매량은 953만5582대다. 2세대 쏘나타 ‘Y2’, 1988. - 국내 최초의 자체적 디자인을 적용하고, ‘전륜구동’으로 실내 공간 넓어졌다3세대 쏘나타 ‘쏘나타Ⅱ’ - ‘접이식 사이드 밀러’, ‘운전석과 조수석 에어’ ,‘ABS’, ‘ECS’3세대 쏘나타 페이스리프트 모델 ‘쏘나타Ⅲ’4세대 쏘나타 ‘EF 쏘나타’ - 독자개발한 ‘2.5 텔타 엔진’, ‘HIVEC 변속기’ 채택으로 기술 독립 상징4세대 쏘나타 페이스리프트 모델 ‘뉴 EF 쏘나타’ - 2004년 미국 ‘J.D.Power’ 가 선정한 산차품질평가 1위 선정5세대 쏘나타 ‘NF 쏘나타’ ​ ‘2.0· 2.4 세타 엔진’· ‘파워 트레인 독립’ 주철블록 대신 ‘알미늄 블록’ 적용 엔진 경량화를이룩하고 엔진 수출의 신호탄이 되었고, ‘AGCS(능동형선회 제어 서스펜션 기술)’로 후륜조향기술 향상으로 전륜구동 선회 성능을 크게 개선하였다.5세대 쏘나타 페이스리프트 ‘NF 쏘나타’ 소나타 트랜스폼6세대 쏘나타 ‘YF 쏘나타’ 전면부◀···6세대 쏘나타 ‘YF 쏘나타’ 하이브리드···▶후면부 6세대 쏘나타 ‘YF 쏘나타’ 페이스리프트 ‘쏘나타 더 브릴리언트’ ​국내 최단기 10만대 판매를 돌파했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무시받던 미국 시장에서 연간 20만대 이상을 팔아치울 정도로 주목할만한 경쟁 상대로 현대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인식되도록 상당한 공을 세운 차량이다.7세대 쏘나타 ‘LF 쏘나타’ 일반형 ◀···7세대 쏘나타 ‘LF 쏘나타’ 페이스리프트 ‘쏘나타 누 라이즈’ ···▶터보형전면부◀···7세대 쏘나타 ‘LF 쏘나타’ 페이스리프트 ‘쏘나타 누 라이즈’ 하이브리드 ···▶후면부8세대 쏘나타 ‘DN8’ (2019) - D는 D 세그먼트 차량, N은 현대자동차 세단형 차종, 8은 8세대 모델을 의미전면부◀···8세대 쏘나타 ‘DN8’ 하이브리···▶후면부전면부◀···8세대 쏘나타 ‘DN8’ 센슈어스(1.6T)···▶후면부8세대 쏘나타 ‘DN8’ 페이스리프트 ‘DN8 PE’(2023)전면부◀···8세대 쏘나타 ‘DN8’ 페이스리프트 ‘DN8 PE’···▶후면부​​ [46]고급 승용차 개척한 ‘그랜저(Grandeur)’2세대 그렌저 전면부현대 그렌저 1세대 (YFL) 후면부​ - MPI 120마력 2.0L 시리우스엔진··▶130마력 2.4L 엔진, 5단 수동변속기···▶4단 자동변속기, 4도어, 전장 4,865mm, 전폭 1,725mm, 공차 중량 1390~1,520kg1985년, 현대자동차는 기존 플래그십을 맡고 있던 그라나다가 유럽 포드로부터 부품 단종 선언으로 인해 12월을 끝으로 단종될 예정이었고, 현대자동차는 그라나다가 단종되는 1985년 12월부터 그랜저가 출시되는 1986년 7월까지의 공석을 메우기 위해 기존 스텔라를 고급화한 소나타를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소나타는 경쟁사인 대우자동차의 로얄 시리즈 고급 모델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고, 이후 1986년 7월 24일에 로얄 시리즈를 제대로 겨냥한 ‘그랜저’를 출시하게 된다.그렌저 ‘ V6 3.0’- 1989년 9월에는 164마력 3.0L V6 SOHC 엔진 장착 V6 3.0까지 내놓았다​대우 로얄에 가려진 고급 세그먼트 명성을 다시 회복한 의미있는 모델이다. 또한 장착한 옵션들 중에선 국산차 최초로 ‘풀 전자제어 인젝션 방식(MPI) 엔진’과, ‘ABS’, 차고 조절이 가능한 에어 스프링 방식인 ‘ECS’를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46 현대차가 1986년 7월에 출시한 그랜저는 국산 고급 승용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이다. 현대차와 미쓰비시가 공동 개발·생산해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 출시됐다. 1998년 등장한 3세대 XG부터는 현대차가 독자 기술로 개발을 진행했고, 국내외 누적 판매량은 274만7254대다.​ 고 정주영 회장이 “나가 만든 아파트(압구정현대아팥)에 살고 내가 만든 차(그랜저)를 타면서 나를 압박하면 안 되지” 하고 정치인들을 향해 푸념한다는 내용의 신문 만평으로도 유명하다. ​ [47] 마이카 시대를 연 ‘프라이드(Pride)’ (기아자동차)1세대 기아 프라이드 ‘Y-CAR’ - 1987세단◀···2세대 기아 프라이드‘ JB’···▶해치백세단◀···2세대 기아 프라이드‘ JB’ 페이스리프트, 2009.···▶해치백3세대 기아 프라이드 ‘UB’/‘LB’, 2011.세단3세대 기아 프라이드 올 뉴 프라이드 ‘UB’/‘LB’, 2011.해치백세단◀···3세대 기아 프라이드 올 뉴 프라이드 페이스리프트 ‘UB’/‘LB’, 2014.···▶해치백​​ 47 1987년 출시된 기아 프라이드는 대한민국의 마이카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차량이다. 당시까지 국산 승용차 가운데 가장 작은 차였지만, 잔고장이 없다는 입소문이 돌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첫해 2만8623대가 팔린 것을 시작으로 1992년까지 12만6226대가 판매되며 내수 시장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연비가 시내 주행 기준(FTP-75 모드) 리터당 18.6km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라던 혼다 시티(리터당 18km)를 능가해, ‘휘발유 냄새만 맡아도 간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48]첫 경형 승용차 ‘티코(TICO)’ (대우자동차)대우자동차에서 만든 전륜구동 5인승 경차로,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생산했다. 티코(Tico)는 코스타리카 원주민(native of Costa Rica)을 뜻한다.​​ 48 ‘새로운 세대, 새로운 차 티코!’ 대우는 1991년 5월, 대한민국 첫 경형 승용차 티코를 출시했다. 티코는 합리적인 가격(당시 300만~400만원대)과 경제적인 유지비로 주목받았으며, 출시 첫해 3만 대가 판매됐다. 이후 경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로 평가받으며 대한민국 경차 보급 확대에 기여했다. 7. 레저시설​ ⊙태극당(1946), ⊙용인자연농원(1976), ⊙롯데월드(1989), ⊙찜질방(1993), ⊙PC방(1990년대 말) [49]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太極堂)’​ 49 태극당(太極堂)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1946년에 서울 명동에서 개업하고 1973년에 장충단공원 앞으로 이전했다. 상호는 창업주 신창근 대표가 우리 민족의 이상을 담는다는 뜻에서 지었다. 모나카 아이스크림과 사라다빵, 단팥빵, 월병 등 ‘레트로’ 메뉴가 강세다.​​49-1.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太極堂)’​​-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73년 전통의 서울 장충동 빵집 태극당(太極堂)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은 군산의 ‘이성당’) 창업주가 1945년 광복 후 일본인이 운영하던 제과점을 인수해 서울 중구 명동에 처음 문을 열었고 1973년 지금의 본점이 위치한 장충동으로 위치를 옮긴 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태극당(太極堂)이 오래된 빵집이 뉴트로 성지, 빵지순례 필수 맛집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입소문이 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동대입구역에 내려 2번 출구를 찾으면 태극장(太極堂)의 이름과 빵 아저씨 캐릭터가 태극당을 안내한다. 지하철 출구 안내판에 빵집이 등장하는 건 태극당(太極堂)이 유일한 가게가 아닐까.‘과자 중의 과자. 태극당’이라는 커다란 오래된 한자 간판이 부착된 건물 입구에는 ‘빙수를 드시고 가시면 시원합니다’라는 세련된 디자인의 배너가 놓여 있어 옛것과 새로운 것이 어색하지 않은 어울림을 보여준다. ​태극당(太極堂)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태극당(太極堂)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샹들리에와 ‘태극식당’이라는 글자의 붉은색 간판이다. ‘납세는 국력, 꼭 드립니다. 영수증을, 꼭 받아 가세요 영수증을’ 등 납세를 중시했던 창업주의 경영 정신이 배어 있는 옛날 표어들도 과거의 흔적 그대로 남아 있다.빵이 진열된 각 공간에는 전통적인 분위기의 패키지와는 대비되는 현대적인 감성의 디자인으로 빵 아저씨 캐릭터와 ‘SINCE 1946 TAEGEUKDANG’ ‘태극당 열리다’라는 슬로건이 인쇄된 배너가 태극당(太極堂)을 찾은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함께 공존하는 태극당(太極堂)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태극당(太極堂)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궁금해할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태극당(太極堂)의 변화는 지난 2013년 창업주를 대신해 30대인 신경철 태극당 전무 이사가 태극당(太極堂)의 운영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진짜 가치 있는 전통은 지켜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과거의 유산에서 ‘지킬 것은 지키고 변화가 필요한 시대에 바꿀 것은 바꾼다’라는 철학이 반영된 브랜딩과 리모델링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그가 유명 커피전문점 ‘앤트러사이트’와 원두 공급 계약을 맺고 다방식 커피가 아닌 20대들이 좋아하는 커피를 도입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메뉴들을 도입하지는 않고 오래된 빵집의 맛을 지금도 맛보고 싶어 하는 단골 고객들을 겨냥해 모나카 아이스크림, 버터케이크, 단팥빵, 야채 샐러드빵 등 태극당의 대표 메뉴들을 강화했다.태극당(太極堂)의 변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브랜딩이다. 과거와 단절되는 변화가 아닌 옛 디자인의 형태를 간직하되 현재의 감성에 맞게 세심한 변화를 더했다. 1970년대 무궁화 패턴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패키지도 리뉴얼하면서 로고와 포장 디자인을 통일했고 태극당이 처음 문을 연 1946년 이후의 자료를 모아 광복 직후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목 간판의 감성을 반영해 태극당(太極堂) 옛 서체를 복원한 ‘태극당(太極堂) 1946체’라는 서체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새롭게 리모델링을 단행한 후 재개장했다. 태극당의 상징인 샹들리에와 농축원의 풍경을 그린 벽화 등은 그대로 남겼고 ‘납세는 국력이다’‘계산을 정확히 합시다’ 같은 오래된 표어들도 고스란히 살렸다. 카운터를 지나는 공간에는 최신 트렌드를 살린 새로운 디자인이 가미된 카페를 새로 만들었다.태극당(太極堂)은 젊은 세대들에게 가게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했다. 20대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패션 브랜드 ‘브라운브레스’ 슈즈 브랜드 ‘수페르가’와 패션 아이템을 공동 제작하고,​ 무신사와 함께 26년 만에 재발매하는 폴로 랄프 로렌의 ‘윈터 스태디움 리미티드 에디션’ 온라인 쇼케이스를 태극당에서 진행했고 롱라이프 디자인 숍 ‘디앤디파트먼트’에서는 태극당 브랜드 전시회를 가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을지로의 복합문화공간 ‘아크앤북’에 숍 인 숍(shop in shop) 형태로 입점하며 외부 공간에서도 태극당(太極堂)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어른들의 추억담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옛날 빵집의 전통과 세련되고 힙스러운 디자인과 소통 방식이 결합되어 새로운 매력을 더한다. 꼭 보존해야 할 것은 따뜻하게 지켜내면서 대전이사,대전익스프레스,삼손익스프레스,대전사무실이사,대전포장이사,제주도이사,1660-2404 전통과 역사의 기반 위에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한 것들은 지금의 눈높이에 맞춰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태극당(太極堂) 2층 엘리베이터가 있는 벽면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특별한 문구가 있다. 늘 그 자리에 한결같은 모습을 지키고 있다.​남길 것은 남기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꿀 것을 바꾸는 태극당(太極堂)은 맛있는 빵을 맛보기 위한 빵지순례의 코스를 넘어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보여주는 특별한 영감과 배움을 전해주는 브랜드이다. ​​ [50] 용인 자연농원 (현 에버랜드Everland)​1976년 4월 17일 삼성그룹에 의하여 국내 최초의 가족공원으로 개장되어 1977년 경기도에 의하여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1996년 3월 용인자연농원에서 "항상 휴일과 같은 편안함과 즐거움이 있는 곳"을 표현하는 ‘에버랜드(Everland)’로 개칭하였다.​ 초창기의 자연농원은 식물원, 동물원, 사파리로 구성되었으며, '자연농원'이라는 이름답게 밤나무와 복숭아나무 등의 과일나무가 있었고, 동물로는 사자, 사슴, 멧돼지 등이 있었다. 당시 놀이기구도 몇 개 있었으나, 현재의 에버랜드처럼 많지는 않았다. 9개가 있었다. ​개장 당시 자연농원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600원, 어린이 기준으로는 300원이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2025년 기준 각각 6,365원, 3,183원이다.​원년 어트랙션 ‘젯트열차’가 현재의 이솝빌리지 자리에 있었으며, 1979년 ‘범퍼카’가 한국에 처음으로 생겼고, 국내 최초의 다크라이드였던 ‘지구마을’이 1985년 10월, ‘환상특급(현 롤링 엑스 트레인)’이 1988년 4월, ‘독수리요새’가 1992년 9월, ‘아마존 익스프레스’가 1994년 4월에 개장했다. 에버랜드로 명칭이 바뀌기 두 달 전인 1996년 1월에는 ‘허리케인’이 도입되었다.​1994년 11월에는 ‘1기 판다월드’가 건설되었다. 이 때 들어온 판다는 ‘리리’와 ‘밍밍’이며 후 IMF 외환위기로로 인해 계약 기간인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1999년 2월에 쓸쓸하게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최고 입장객 수와 최저 입장객 수는 모두 자연농원 시기에 기록되었다. 최고 입장객 수는 1994년 6월 5일의 120,443명, 최저 입장객 수는 개장 후 첫 겨울인 1977년 1월 20일 의 2명이다.​제일모직 리조트 · 건설 부문의 ‘에버랜드 리조트’는 각종 어트랙션과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 동물원과 각종 놀이시설이 있는 ‘테마파크 에버랜드 ’· 복합형 워터 파크 ‘캐리비안 베이’ · 자동차 경주시설 ‘스피드 웨이’ 등 3개의 위락단지로 구분되어 있다. ​테마파크와 연계하여 조성된 에버랜드 리조트 내의 시설로는 가족 숙박시설인 ‘홈브리지’ · ‘글렌로스 골프클럽’ · ‘교통박물관’ · ‘호암미술관’이 있다.이 지역은 해발 500m의 석성산과 호수가 있는 친환경 지역이며, 에버랜드 리조트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눈썰매장’도 있다. ​개장 50주년을 앞둔 에버랜드는 시설 면에서도 엄청난 발전이 있었는데, 2004년에 록 음악을 소재로 한 '락스빌'이 탄생한 데 이어 2005년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동화책'(이솝우화)을 모토로 한 '이솝 빌리지'가 탄생하였으며, 2008년 3월에는 대한민국 최초 우든코스터이자 에버랜드하면 딱 떠오르는 롤러코스터인 ‘T 익스프레스’와 한국에 1개밖에 없는 기종인 ‘렛츠 트위스트’를 한꺼번에 선보였다.​2013년에는 수륙양용 사파리 ‘로스트 밸리’가 탄생하였고, 2016년에는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들여오면서 판다를 직접 볼 수 있는 2기 '판다월드'가 1998년 이후 18년 만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 여파로 전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지구마을’이 결국 철거되었고 그 자리는 ‘뮤직가든’이라는 정원으로 대체되었다.​에버랜드는 새로운 시설이나 이벤트의 지속적인 도입으로 방문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재방문을 유도하고 있으며, 한해 입장객 수는 820만 명에 이른다.​에버랜드는 초식 사파리인 ‘로스트 밸리’와 사자 호랑이 등의 ‘사파리월드’가 있는 동물원, 계절별로 다양한 꽃을 즐기는 ‘포시즌스가든’ · ‘장미원’ 등의 정원, ‘티익스프레스’ · ‘콜럼버스대탐험’ · ‘레이싱코스터’ 등 선호에 맞게 즐길 수 있는 각종 어트랙션과 ‘화려한 퍼레이드’와 ‘멀티미디어쇼’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갖췄다. ​또한 1986년에 오픈한 꽃축제의 효시 ‘장미축제’를 비롯해 ‘튤립축제’ · ‘썸머스플레쉬’ · ‘해피할로윈’ · ‘크리스마스 판타지’ · ‘스노우페스티발’ 등과 같은 계절축제를 활성화하여 사계절 복합 리조트로 운영하고 있다. 부근의 기흥구 보라동에는 ‘한국민속촌’이 있는 등 이 일대는 국내 최대의 관광지가 되고 있다.1976년 4월 17일 용인 자연농원 개장식​​ 50 1970~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낡은 사진첩에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서 찍은 사진 한 장쯤 들어 있을 것이다. 용인자연농원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테마마크로 삼성이 설립, 운영한다. ​초창기에는 식물원, 동물원, 사파리로 구성됐고 입장료는 성인 600원, 어린이 300원이었다. 1970년대 어린이들의 최고의 놀이터였던 용인자연농원은 한때 1일 관광객 수가 12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번창했고, 1996년에 개장 20주년을 맞아 이름을 에버랜드로 바꿨다.​​[50-1] 에버랜드Everland) ‘10년 앞을 내다본 온 국민의 산 교육장'을 실현하기 위한 가족동산은 가실리와 전대리 일대에 조성됐다. 총 66만 1157m²(20만여 평)의 규모에 자연식물원, 자연동물원 그리고 놀이동산을 설치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동산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23만 1405m²(7만여 평) 규모의 자연식물원은 1973년부터 착수해 ‘플라워센터(Flower Center)’, ‘로즈가든(Rose Garden)’, ‘썬큰가든(Sunken Garden)’을 1975년 조성 완료했다. 지형을 살려 온실식 식물원이 아닌 노천식 식물원으로 조성함으로써 단순한 유원지 개념을 넘어 휴식처인 동시에 산 교육장으로서 도시와 농촌의 가교역할을 하도록 했다.당시 입장료는 어른 600원, 어린이 300원. 서울 전철 요금이 40원에 불과하던 시절이다. 용인 자연농원 개장식 1976년 4월 17일. - 4월18일부터 일반인에 공개했다용인자연농원 시절의 사파리 모습. 호랑이는 1980년 들여왔다. ​면적 1500만㎡(약 450만 평)의 땅 대부분이 밤나무·복숭아나무 등을 심은 과수원이었고, 동물농장이었다. 사자·사슴·멧돼지 등 동물 200여 종이 농원에서 살았다. 사파리를 맨 처음 차지한 건 사자였다. 이후 호랑이가 들어갔고, 곰과 기린이 차례로 사파리 생활을 시작했다. 농원에서 가장 많은 동물은 의외로 돼지였다. ​자연농원 초창기에는 무려 2만5000마리의 돼지가 이곳에서 살았다. 1990년대까지 멧돼지 곡예쇼는 자연농원의 대표 콘텐트 중 하나였다. 아기 판다 푸바오(오른쪽)와 어미 아이바오. 현재 에버랜드의 최고 인기스타다. 사진 에버랜드​요즘 에버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은 아기 판다 ‘푸바오’다. 아시는지. 푸바오가 있기 전에도 자연농원에는 판다 커플이 살았었다. 1994년 11월 한·중 수교를 기념해 판다 한 쌍​(‘밍밍’과 ‘리리’)이 들어왔다. ​50여 일 만에 130만 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나, 1999년 중국으로 돌아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판다를 키우는 것이 사치라는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장미축제가 열린 1994년 5월 용인자연농원 장미원의 모습 ​지금의 ‘장미원’도 1976년 자연농원 개장과 함께 조성됐다.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 ‘장미’라는 조사 결과에 따라 장미 122종 3500그루를 심었다.​ 장미를 가꾼 지 10년 뒤인 1986년 6월, 자연농원은 국내 봄꽃축제의 효시로 통하는 ‘장미축제’를 시작했다. 튤립가든 역시 1992년 4월 축제를 개최하고 ‘썸머스플레쉬’ · ‘해피할로윈’ · ‘크리스마스 판타지’ · ‘스노우페스티발 등과 같은 계절축제 매년 개최하고 있다.​자연농원의 초기 시설은 식물원, 동물원, 사파리로 구성돼 일부 놀이기구가 있는 정도였는데요. 1996년 3월 25일개장 20주년을 맞아 이름을 '에버랜드'로 바꾸고 테마파크로서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갖추게 됐다. 실내외 워터파크 ‘캐리비안베이’가 문을 연 것도 이 시기였다.에버랜드의 마스코트 ‘레니’와 ‘라라’는 아기사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다바람개비 모양의 심볼마크 '네이처휠'과 초기 마스코트 ‘킹코와 콜비’(1996~2004)​세계적인 BI(Brand Identity)전문회사 랜도사와 함께 자연·발견·전설 등 3가지 기조를 살려 이름과 로고를 변경했다. 에버랜드의 '에버'는 영원함을 뜻하고 '랜드'는 자연과 포근함을 상징한다. '네이처휠'로 불리는 바람개비 모양의 심벌마크는 정열, 환희, 평화, 사랑, 신비, 모험을 상징하는 6개의 색으로 이뤄졌다.리뉴얼된 모습.(1998년경~2004년)​​1996년과 1997년에는 2년 연속 입장객 순위 세계 8대 테마파크로 선정됐다. 또한 1996년 관광진흥촉진대회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하고 1997년 한국 50대 히트상품에 선정되는 등 에버랜드라는 이름은 자연농원이 쌓아 올린 영광의 끝에서 날개를 활짝 폈다. 행잉(Hanging) 코스터 ‘독수리요새’, 1992. 9.​ 1992년 9월 도입한 독수리요새는 기존의 롤러코스터와 달리 레일에 탑승물이 매달려 진행하는 형식의 행잉(Hanging) 코스터로서 세계에서 4번째, 아시아 최초로 도입했다. 당시 세계 유명 행잉 코스터의 레일 길이가 700~800m인 데 비해 독수리요새는 1000m로, 커브와 상승, 하강 시 원심력에 의해 몸이 자유비행하는 스릴을 느낄 수 있어 최고의 놀이기구로 인기를 모았다.1994년 도입한 아마존 익스프레스​1994년 도입한 아마존 익스프레스는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대표적 놀이시설이었다. 1993년 1월 대형시설물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 국내 최초의 실외 래피드라이드(Rapid Ride) 시설을 국내 자체의 기술로 완성하였다. 580m의 밀림을 따라가는 아마존의 급류를 타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는 아마존 익스프레스는 그저 물살에 실려 배를 모는 것이 아니라 아마존을 탐험하는 스토리를 곁들임으로써 실제 모험을 하는 듯한 환상을 불어넣었다. 아마존의 원시림과 안개지역, 아마존 원주민들인 인디오의 부락 말로카를 경험하고 동굴과 높이 7m의 대형폭포를 절정으로 여러 명이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6분 45초 동안 아마존 밀림 속의 급류에 휩쓸려가는 듯한 짜릿한 기분에 젖어들 수 있었다.​커다란 원형보트가 5개의 섹션으로 분리돼 미세한 파도의 움직임에도 크게 움직이고 한 배에 탔지만 제각각 다른 스릴을 느낄 수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승하차 방식을 타 유원지에 있는 턴테이블(Turn-table) 방식이 아니라 컨베이어 방식으로 구성해 고객의 대기시간을 줄인 것도 특징이었다. 독일의 칼슨대학 유속연구팀이 연구해 모형을 제작한 후 실험을 거쳐 수로를 설계한 아마존 익스프레스는 조파기(造波器, Wave Maker)가 없어도 유속을 변형시켜 아마존 밀림의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1994년 설치한 ‘아마존 익스프레스’. 보트를 타고 580m 길이의 급류를 타는 이 놀이시설은 현재까지 6000만 명 이상이 탔다.두대를 동시에 가동하는 ‘콜럼버스 대탐험’, 1998.5.​1998년에는 초대형 범선 안에서 그네타기를 하는 콜럼버스 대탐험을 도입했다. 어느 놀이공원을 가더라도 다 있는 바이킹을 에버랜드는 콜럼버스 대탐험으로 명칭을 정했다. 33m 고공에서 75도 경사로 떨어지는 아찔한 바이킹을 에버랜드는 콜럼버스가 탐험했던 이야기로 구성함으로써 간접경험에 의한 즐거움을 극대화시켰다. 특히 1회 탑승인원 240명으로 바이킹 중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 콜럼버스 대탐험은 커다란 2대의 배가 서로 엇갈리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최고 지점까지 상승한 후 하강 전 0.1~0.2초간 잠시 정지하는 등 최고의 스릴과 쾌감을 선사했다.​​자연농원 초기 놀이기구는 9개가 전부였다(현재는 40개가 넘는다). 청룡열차가 우주선만큼이나 진기했던 시절, 롤러코스터 ‘제트열차’ 앞에 유독 긴 줄이 섰었다. 1980년대 들어 놀이기구를 대폭 확대했는데, 대부분이 국내 최초 시설이었다. 이를테면 후룸라이드(1981), 우주관람차(1982), 바이킹(1983), 비룡열차(1986), 환상특급(1988) 등이다. 1987년 개장한 눈썰매장'스노우 버스터'도 국내 최초 눈썰매장이었다. 스노우 버스터에는 단일 코스로는 국내 최장 길이인 200m '아이거',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융프라우'(120m), 유아전용 '뮌히'(90m) 등 총 3개의 눈썰매 코스가 마련돼 있다.1970년대 용인자연농원 시절의 수영장. 한국 최초이고 세계 최대 실내외 복합형의 워터 파크였던 ‘캐리비안베이’는 1996년 7월 12일 개장했다 복합형 워터 파크 ‘캐리비안베이’​복합형 워터 파크 ‘캐리비안베이’​실내외 복합형 워터 파크 ‘캐리비안베이’​​ [51] 롯테월드 (롯테그룹)​롯데월드는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다양한 쇼핑, 문화, 엔터테인먼트 시설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 명칭이다.일반적으로 ‘롯데월드’라고 하면 놀이기구를 갖춘 테마파크를 떠올리곤 한다. 이는 사실​ ‘롯데월드 어드벤처’ 를 줄여 부르는 표현이다.​ 51 롯데월드는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테마파크로 실내의 ‘롯데월드 어드벤처’와 민속박물관, 아이스링크, 야외의 ‘매직아일랜드’ 등을 갖추고 있다. 1989년 18종의 어트랙션으로 개장해, 1990년대에 용인자연농원, 서울대공원과 함께 ‘테마파크 3대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998년에 도입한 자이로드롭 덕에 IMF 한파 매출이 늘었다. 매일 오후 2시와 7시에 대규모 판타지 퍼레이드를 선보인다. ​51-1. 잠실 롯테타운​롯데월드는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다양한 쇼핑, 문화, 엔터테인먼트 시설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 명칭이다.​일반적으로 ‘롯데월드’라고 하면 놀이기구를 갖춘 테마파크를 떠올리곤 한다. 이는 사실 ‘롯데월드 어드벤쳐' 를 줄여 부르는 표현이다. ​롯데월드는 넓은 의미에서 김해의 롯데워터파크와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 등도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된다.잠실 롯테타운​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위치한 잠실 롯데타운은 국내 최고층이자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를 중심으로 조성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복합 문화 랜드마크이다.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어드벤처’ 바로 앞에 도심 속 휴식 공간인 ‘석촌호수’가 펼쳐져 있어,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과 조화로운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잠실 롯데타운에는 백화점, 쇼핑몰, 마드, 테마파크, 영화관, 공연장, 아쿠아리움, 전망대, 호텔, 면세점, 미술관 등 다양한 롯데구룹 계열의 쇼핑·문화·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집약되어 있다. ​이러한 상업·문화 인프라와 더불어, 롯데건설이 시공한 신천동 롯데캐슬골드와 잠실 르엘 같은 주거 단지까지 더해지면서, 잠실역 일대는 쇼핑·문화·주거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합도시를 형성한다.서울 지하철 2호선 및 8호선 잠실역과 지하환승주차장 등 주요 시설들이 지하광장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며, 서울 최대 승하차 인원을 자랑하는 잠실역의 풍부한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송파구 최대 상권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상업·문화·교통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롯데월드 어드벤처는 1989년 7월 12일에 ‘실내 테마파크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정식으로 개장하고, 1990년 3월 24일 호수공원 ‘매직 아일랜드’가 문을 열면서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다. 총 6,500억 원이 투자되었으며, 현재 운영은 롯데그룹의 계열사인 호텔롯데의 월드사업부에서 담당하고 있다.​롯데월드타워는 ‘롯데월드몰’이 2014년 10월 16일에 먼저 개장한 뒤, 2017년 4월 3일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완성했다. ​실외 구역인 테마파크인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비롯하여 백화점, 아이스링크, 민속박물관, 호텔 등이 들어서 있는 건물을 통칭하기 때문에 롯데월드 어드벤처와 구분해서 부를 필요가 있다. ​우천시에는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어트랙션이 많다. 특히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난방을 틀어주는 실내 공간을 운영한다는 부분이 가장 큰 메리트여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명실상부 에버랜드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규모의 테마파크이다.​롯데월드 어드벤처는 연간 약 6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대한민국 도심 속 대표 테마파크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365일 즐길 수 있는 실내 테마파크와 대중교통만으로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내·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민속박물관’,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스케이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아이스가든’ 등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한 공간입니다.​​[52] ‘찜질방’찜질공간◀···▶중앙홀목욕시설◀···▶수면공간​ 52 찜질방과 PC방도 우리나라가 개발하고 보유한 고유 문화다. 한국의 전통 사우나인 ‘찜질방’은 기존 목욕탕에 몸을 찜질할 수 있는 뜨거운 방을 접목시킨 형태인데, 수건을 말아 머리에 쓰는 ‘양머리’와 맥반석 계란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찜질방 또는 한증막(汗蒸幕 : Hanjeungmak)​청나라 시절 아편 중독자들이 마약의 부작용으로 추위를 심하게 느끼자 한증막에 불을 강하게 피우고 모여서 아편을 피우던 장소가 찜질방의 시초이다.​



​찜질방 또는 한증막(蒸氣房 또는 汗蒸幕, : Hanjeungmak)은 한국의 전통 사우나이다. 찜질에서 ‘찜’은 ‘몸을 온천 혹은 뜨거운 모래나 물에 담가 땀을 흘려 병을 고치는 일’을 의미하는데 말 그대로 찜질방은 기존 목욕탕에 몸을 찜질할 수 있는 뜨거운 방을 접목시킨 형태이다. ​



​강렬하고 뜨겁고 건조하며, 전통적으로 소나무 장작을 사용하여 돌로 만든 둥근 돔형의 찜가마를 데우는 50(℃)~90(℃) 정도의 저온 사우나를 중심으로 한 건강 시설이다. ​



​요즘은 목욕과 식사, 운동, 피부 관리, 수면, 오락 등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형화된 찜질방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찜질방은 단순한 목욕시설이 아니라 복합 레저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주로 대한민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많이 성업하고 있으며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확산되고 있다.​‘찜질방’에는 사우나(한증막), 목욕 시설은 기본이고, 곳에 따라 만화방, PC방, 수면실, 오락실, 영화실, 볼링장, 식당, 매점, 헬스 클럽, 노래방, 마사지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매점은 식혜, 매실, 석류, 녹차 등의 음료수를 파란색 뚜껑이 있는 통에 얼음을 넣어 판매하고, 훈제 맥반석 계란에 작은 손톱만한 소금 봉지를 함께 넣어 판매한다.​식당은 주로 한식과 분식을 판매하지만, 곳에 따라서는 우동이나 짜장면 등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목욕탕의 경우는 남녀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기본, 찜질 공간이나 중앙홀은 남녀혼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면 공간의 경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남성, 여성 전용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곳이 많다. 수면 공간은 크게 트여 있는 경우와 개인별 칸막이가 되어 있는 경우로 나눌 수 있으며 대개 바닥에 까는 쿠션이나 이불, 수건, 베개 등이 구비되어 있다.베개는 위생상 딱딱한 나무 재질이나 가죽의 부드러운 재질이 일반적이며, 천으로 된 것은 위생상 잘 사용하지 않는다.[53] ‘PC방’​53 1990년대 말에 생긴 PC방은 10~20대 이용자가 절대다수인 문화공간이자 카페다. IMF사태 당시 실직자들이 재취업 정보를 위해 찾느라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해외의 게임업체 관계자들은 국내 게임업체의 성공 이유 중 하나로 PC방을 꼽기도 한다. ​『PC 방』​



​레드포스PC방​1990년대 말 국민의 정부의 국민 PC 정책과 인터넷 인프라 확충이 맞물리면서 태동한, 여러 대의 컴퓨터를 설치하고 손님들이 돈을 지불하며 일정 시간 동안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 제공 공간. ​기본적으로 PC 이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主)가 되지만, 현재의 PC방은 절대 다수가 카페처럼 음식도 같이 제공하여 PC 서비스와 음식점을 병행하고 있다. 일명 PC 카페라고 불릴 정도이다.​



​24시간 영업이 일반적이기에 본래의 이용 목적 외에도 야간, 심야 등의 시간에 잠시 시간을 보내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심야에 대중교통이 끊기거나 숙박업소를 찾기 힘든 상황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이다. 밤 10시 이후론 미성년자를 안받는 곳이 많다. 또 대부분의 경우 모든 좌석에 핸드폰 충전기 등이 비치되어있다.​



​2025년 시설이나 유지보수가 어느 정도 되는 브랜드로는 ‘레드포스PC방 체인점’ 등이 있다.유명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은 대체로 매장관리가 되어있는 편이다.​한국의 PC방은 Windows 95 출시를 앞두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외국의 인터넷 카페와 유사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최초의 인터넷 카페는 1994년 서초동 법원 앞에 ’BNC(Bit Network Communication)’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BNC가 최초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992년에 오픈한 대학로 혜화로터리에 있던 ‘칸타타’라는 카페가 최초이다. 이후 1995년 3월 홍대앞에 개장한 ‘BNC PC방’이 현재 형태의 PC방의 시초로 여겨진다. 즉, 인터넷 카페로는 칸타타가 최초이고, 현재 형태의 전문 PC방은 홍대의 BNC이다.​1997년 본격적으로 인터넷 매직플라자는 체인사업이 나오면서 PC가 주가 되고, 간단한 음료나 컵라면을 제공하는 현재의 PC방과 동일한 형태의 점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는 여의도나 건대입구, 신림동(서울대)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PC방의 용도는 게임보다는 사무 업무의 비중이 높은 편이었다. 인터넷 자체가 일반 가정에서 그리 흔했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그리고 1998년 가을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라는 쌍두마차의 등장과 이듬해인 1999년 ADSL 기반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e스포츠 대중화의 서막인 스타리그와 맞물려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청소년들의 돈을 빼앗아가는 장소가 오락실에서 슬슬 PC방으로 옮겨간 것이다.​ 처음에는 게임방과 PC방이라는 용어를 혼재해서 사용했었다. 컴퓨터의 대전이사,대전익스프레스,삼손익스프레스,대전사무실이사,대전포장이사,제주도이사,1660-2404 활용이 적었고 숙달자도 많이 없으며, 게임 말고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에 그렇게 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 서핑, 급한 컴퓨터 업무 처리, 이메일 확인, 정보 검색, 인쇄 등도 가능해지고, 남녀노소 이용 경험자가 늘어나자 게임방보다 PC방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8. 술·담배​ ⊙백화수복(1945), ⊙크라운맥주(1952), ⊙아리랑(1958), ⊙솔(1980) [54] 백화수복 (주식회사 백화···▶두산주류BG···▶롯테)​ 54 백화수복은 광복과 함께 태어났다. (주)백화 시절인 1945년에 첫 출시되어 백화양조, 대한양조, 두산주류BG를 거쳐 롯데그룹에 인수된 이후 현재까지 80년 동안 제사상에 올리고 온 가족이 음복하는 제주(祭酒) 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백화수복​롯데그룹에 인수되기 전 두산주류BG 시절 은 물론이고 그 이전인 대한양조, 백화양조, (주)백화 ​​시절부터 양조되어온 80년이 넘는 연혁을 가지고 있는 증량청주로,제사상에 올릴 차례주 용도로 부동의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술이다. ​백화수복은 '오래 살면서 길이 복을 누리라'는 뜻으로 1945년 출시된 이후 오늘날까지 81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00% 국산 쌀의 외피를 30% 정도 도정 후 사용하고, 저온 발효 공법과 숙성방법으로 청주 특유의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차례 또는 선물용 ‘백화수복’은 제품 용량이 700㎖, 1.8ℓ의 두 종류로알코올 도수는 13도이다.​우리 민족의 정성된 마음을 담아내기 위해 라벨은 동양적인 붓글씨체를 사용하고 라벨과 캡(병뚜껑)에도 금색을 적용해 고급스러움과 우리나라 대표 차례주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차례주로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갖고 있고 유통망도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설날, 추석 등 명절날에 쓸 제사음식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에 주문하면 곁으로 딸려오는 차례주로 백화수복이 올 가능성이 크다. ​웬만한 이자카야, 오뎅집, 포장마차 등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이자카야의 잔술과 도쿠리는 따로 사케를 시키지 않는 이상 백화수복이 사용된다.​약한 풋사과의 향미를 가지고 있지만 후츠슈(普通酒=보통주)답게 바디감은 별로 없다. 약한 단맛과 신맛이 향미를 받쳐주고 약한 쓴맛이 피니시를 이룬다. 후츠슈 치고는 에탄올 냄새 억제가 잘 된 편이고 동급의 다른 후츠슈(普通酒)에 비하면 밸런스와 품질은 우수한 편이다. ​역사가 워낙 오래된 만큼 노하우가 쌓여 가격과 양을 감안하면 품질이 준수하고, 어디에서나 구하기 쉽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상위 제품으로는 준마이슈인 국향과 다이긴죠슈인 설화가 있으며, 롯데주류의 제품 라인업 중 한국식 청주는 없다.​가격 대비 품질이 괜찮은 것과는 별개로, 이런 저급 후츠슈(普通酒)를 고급 전통 청주로 가장하는 사기에 가까운 마케팅 때문에 전통주 애호가들에게는 평이 매우 나쁘다. 애초에 고급도 아니고 전통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역사가 좀 길다는 이유로 백화수복이 자처하는 이른바 '국가대표 청주'는, 훨씬 깊은 역사를 가진 무형문화재인 경주교동법주, 한산소곡주 등에 더 어울리는 칭호다. 백화수복과 비슷한 가격대로 비교 범위를 좁혀도, 진짜 한국식 청주인 국순당의 예담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가격이 싸다고 마냥 좋게 평가하기에도 애매하다. ​예담은 중저가형의 한계로 여러 첨가물들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주정으로 양을 늘리지 않고 국산 쌀과 전통누룩의 균을 뽑아 종균한 펠릿 형태의 개량 밀누룩을 사용하기에 한국 청주로서의 정통성과 품질 모두 백화수복보다 우위에 있다.​ [55]크라운 맥주(조선맥주···▶하이트)1953년 크라운맥주 광고 - 금관표에서 왕관표로 바뀌었다1957년 조선맥주 영등포공1980년대 조선맥주 영등포공장 전경​ 55 ‘왕관맥주.’ 1952년에 첫 출시된 크라운맥주의 상징은 크라운, 왕관이다. 크라운맥주는 대한민국의 최초 맥주회사인 조선맥주(하이트의 전신)가 프리미엄 오리지널 에일이라는 콘셉트로 내놓은 맥주다. ​크라운맥주는 1962년에 국내 최초로 해외로 수출됐고, ‘크라운 드라이 마일드’는 1991년에 1000만 상자 판매를 돌파했다. 크라운맥주는 1993년에 단종됐지만 2022년 하이트진로가 크라운의 역사성을 재해석해 편의점용 크라운맥주를 내놓기도 했다. ​조선맥주와 OB맥주​



​영등포에 남아있는 오비맥주 공장의 담금솥​



​OB맥주의 살림꾼 카스기린맥주(일본)-쇼와기린맥주(1933)-동양맥주(1948 : 상표는 OB맥주)-OB맥주(1995)-벨기에 인터브루와 합작(1998)-AB In Bev로 주주 변경(2014)​OB맥주는 일본 기린맥주의 자본으로 시작되었다. 동양맥주는 줄곧 OB맥주라는 상표를 쓰다가 회사명도 OB백주로 바꾸었고, 지금은 버드와이저의 AB InBev의 자회사가 되었다.​



​조선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맥주들​화이트 맥주는 대일본맥주라는 지금의 아사히와 삿포로, 에비스를 합작 해서 만든회사에서 시작했다. 조선맥주는 크라운맥주라는 상표를 쓰다가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이후 반사이익으로 화이트맥주가 히트하자 상표도, 회사명도 화이트로 바꾸었다.​재미있는 것은 진로는 한때 진로 쿠어스라는 맥주회사를 설립하여 ‘카스’를 내놓았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데 이를 OB맥주에 매각했다. OB맥주는 이후 '양아들' 카스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진로소주는 나중에 화이트 맥주에 매각된다. 맥주는 OB에 소주는 화이트에 넘어간 것이다.​그리고 OB에서 수입하는 맥주는 OB의 뿌리였던 일본 기린맥주가 아니라 화이트맥주의 뿌리린 일본산토리맥주을 수입하고 있다(모기업인 AB InBev와 산토리의 협력관계 때문인듯). 그런데 일본기린맥주는 라이벌이었던 진로가 수입한다. ​‘80년 맥주라이벌’ 오비맥주 vs 하이트맥주​2012년 출고가 기준으로 국내 주류시장 규모는 7조5213억원이다. 이중 맥주시장의 매출비율은 소주의 41.4%를 훌쩍 뛰어넘는 54.3%. 시장규모는 3조9000억원에 육박한다. 이는 수입맥주를 제외한 집계라 실제 매출액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광복 이전부터 이어온 ‘맥주전쟁’엎치락 뒤치락…상호 발전 시너지​맥주가 여름 성수기를 맞았다. 열대야가 찾아오면 맥주 생각이 간절하다.국내 대표 맥주 브랜드인 OB맥주와 하이트맥주(현 하이트진로)의 경쟁도 높게 올라 간 수은주 만큼이나 뜨겁다.​이들 업체의 맥주 전쟁은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맥주가 일상으로 자리잡기까지는 해방 이전부터 맥주제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들 회사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맥주 ‘크라운맥주’​



​1962년 생산한 크라운 맥주​한국에 처음 들어온 맥주는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은 뒤 들어온 일본의 삿포로맥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비스와 기린맥주도 잇따라 한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수입 술이었던 맥주는 일부 고위층만 즐길 수 있는 고급술로 소비량이 많지 않았다. 1905년 한국의 맥주 소비량은 연간 157만ℓ(15만7000상자, 500㎖/20병)에 불과했다.​



​크라운 맥주 직매점.(사진=하이트진로)​1910년대에 들어서 일본의 맥주회사들이 서울에 출장소를 두고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갔다. 이 무렵 일본은 주세령을 발령해 집에서 만드는 술인 ‘가양주’를 금지하면서 전통주의 맥을 끊었지만, 맥주 소비량은 늘기 시작했다. 1920년대 맥주는 수입 주류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 국내 최초의 맥주공장인 조선맥주 영등포공장 사진=하이트진로 제공​1930년대에 들어서야 한국 최초의 맥주 공장 ‘조선맥주회사’​가 생겼다. 당시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준공된 이 공장은 일본 맥주회사인 ‘대일본맥주’ 계열사로 자본과 기술력 모두 일본에서 들여왔다. 자본금은 600만원, 공장규모 10만여평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당시 유명하던 미쓰코시 백화점보다 높은 5~6층 높이의 건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기린맥주도 같은 해 ‘소화기린맥주’를 설립했다. 이 당시에도 맥주 3상자 반은 쌀 1석(144kg)과 비슷해 명동이나 무교동 등지의 번화가에서만 소량으로 유통됐다.​이 두 맥주회사는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한 적산관리체제를 거쳐 1952년 전쟁 당시 건물의 40%, 설비의 50% 가량이 잿더미가 된 채 민간으로 불하됐다. 민간으로 넘어간 ‘조선맥주’는 상호를 그대로 사용해 크라운맥주를 생산했고 소화기린맥주는 ‘동양맥주’로 이름을 바꿨다.​조선맥주는 현재 하이트맥주의 뿌리가 됐고, OB비맥주는 동양맥주의 명맥을 잇고있다. 이후 현재까지 80여년 간 국내 맥주시장을 더 차지하기 위해 두 회사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OB맥주 전성시대​



​▲ OB맥주 역대 제품. 사진=오비맥주 제공​1960년대 맥주시장을 이끈 쪽은 OB맥주였다. 1965년 처음으로 맥주 판매 100상자 기록을 세우고 생산라인에 외국의 최신설비를 도입하는 1차 증설(1965년), 2차 증설(1971년)로 설비를 늘려 1968년 수입개방으로 외국맥주들이 들어왔지만 60%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했다.​하이트맥주는 1967년 박문덕 현 회장의 선친인 고 박경복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박경복 회장은 경영권 인수 전 부산에서 주정, 소주 등을 생산하던 대선발효공업(현 대선주조)의 회장을 역임했다.​박경복 회장 취임 이후 하이트맥주도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1968년 국제식품심사위원회(ICSP) 최우수금상을 수상, 1971년에는 영등포공장의 시설을 2배로 늘리고 1973년 8월에는 기업을 공개,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두 회사가 양분하던 맥주시장에 1975년 새로운 바람이 분다. 독일의 대표 맥주회사 중 하나인 이젠백이 섬유회사인 삼기물산과 손잡고 한독맥주를 설립, 독일식 맥주를 표방한 ‘이젠백맥주’를 출시한 것. 한독맥주는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하며 양사 체제의 맥주시장에서 점유율 15%를 차지한다. ​당시 시장점유율은 OB맥주 51.7%, 하이트맥주 32.9%, 이젠백맥주 15.4%다.​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의 치열한 견제에 따른 과도한 출혈과 대표의 불법외화유출로 인한 구속 등으로 한독맥주는 얼마 지나지 않은 1978년 도산한다. 한독맥주의 마산공장은 하이트맥주가 인수했다. 당시에도 시장은 오비맥주가 57%의 점유율을 1위를 수성했다.​이 무렵 한국은 수출 100억달러 달성과 중동 건설경기 붐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맥주 소비량이 급증, 영업사원들은 생산량을 초과하는 주문 폭주 속에 주문 받기를 기피하고 대리점 직원들은 한 상자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돈을 싸들고 사무실 앞에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선두 맥주회사였던 OB맥주는 1977년에서 1980년까지 순매출 50%, 순이익 100%씩 성장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이 치러졌던 1980년대에도 OB맥주의 선두는 계속됐다.​하이트맥주는 1989년 전주에 공장을 준공하고 1991년 박문덕 현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판을 흔들기 위한 반격을 준비했다.​



​▲ 하이트진로의 역대 제품.​영원한 승자는 없다​



​▲ 하이트의 초기 광고 사진.​1993년 하이트맥주가 그간 유지하던 크라운 브랜드를 버리고 ‘지하 150m 천연암반수’를 주제로 내건 ‘하이트(Hite)’를 출시했다. 1992년까지 7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던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은 급락했다.​회사 설립 한갑자를 흘쩍 넘긴 1996년 하이트맥주는 맥주시장의 새로운 선두로 등극한다. 만년 2위였던 하이트맥주가 하이트 단일 브랜드로 1위에 올라선 것이다.​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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